나라

동티모르의 커피

큰달팽이 2015. 9. 25. 13:22

적도아래 남태평양의 외로운 섬나라 동티모르(East Timor)

 

이름만으로는 그다지 낯설지는 않고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저기 아프리카 동남쪽 어느 한 귀퉁이에 있을 듯한 나라같은데… 인류의 진보와 문명화가 의심할바 없이 확실시되던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끔찍하고도 잔인한 인간종끼리의 살육사가 역사가 되어버린 동티모르(East Timor)는 400년간의 포르투칼의 강점에 의한 노예생활에 연이어 찾아온 25년간의 인도네시아 식민시절에 전인구의 30%가 학살되고 게릴라와 민병대에 의해 도시의 95%가 파괴된 반인륜범죄와 대량학살의 처절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 나라이다.  20세기 아시아 최후의 식민국가를 마감하고 11년전 UN감시하에 독립국 깃발을 올린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정식명칭 Timor-Leste)은 우리나라와는 시차도 없을만큼 같은 경도상에 있는 저 지구 반대쪽 남반구 남태평양에 떠있는 외로운 고도(孤島)이다. 우리나라는 UN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상록수 부대를 수년전에 파병을 했었고, 동티모르 유소년축구단의 감동적 국제무대 데뷔 실화를 다룬 영화 “맨발의 꿈” 의 무대정도로도 우리에게 알려져있다. 강원도정도의 국토면적에 인구 100만명을 이루는 32개의 종족이 4개의 공식언어외에도 22개의 토속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불과 9개월전부터 UN평화유지군의 철수가 진행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감보다는 동티모르를 가로지르는 흙탕물 강바닥처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는 아직은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요원한 나라이다. 세계 최빈국을 향한 국제사회의 온정어린 관심은 언젠가는 홀로서기의 밀알만이 될뿐이고, 티모르해의 풍부한 유전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실상 호주등 주변 강대국과 동티모르 소수 기득권자의 안녕과 번영을 기약할뿐,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들 자신의 젊은 노동가치와 척박한 땅에서 피어나는 커피나무에 기대가치를 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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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의 서글픈 산물 천연야생 커피

동티모르의 주요자원으로 석유와 가스가 있으나 이는 해상관로로 독립에 앞장선 인접국가 호주등지로 모두 나가버리고, 주식인 쌀조차 자급자족이 안되고, 제조업 또한 전무한 이 나라에서 민간이 생산할수 있는 유일한 품목이 바로 커피(Coffee)이다. 연간 14,000여톤을 생산하며 이는 브라질등의 200분의 1에 불과한 양이지만, 동티모르 수출액의 98%를 차지하는 가히 절대적 품목이라 할 수 있다. 과거 500여년전 포르투칼 식민지 시절 심어진 커피나무가 자생하여 해발 1000미터 이상부터는 천연적으로 야생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이의 채집과 가공이 바로 동티모르 원주민의 유일한 생산품목인 것이다. 동티모르커피의 우수성에 대하여 처음으로 연구를 진행해온 일본의 커피석학 호리구찌선생에 의하면 동티모르 아라비카 커피는 티피카 원종의 우수성을 그대로 간직한채 순연의 모습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다국적 커피기업 스타벅스(Starbucks)는 자신이 배후가 된 동티모르 산지조합 NCBA(National Co-operative Business Association)를 통하여 매년 이나라 생산량의 절대부분인 3000톤이상을 송출해 가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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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서는 유기농으로 커피를 재배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재배하는자 없이 그저 환경에 순응하며 친환경적으로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을뿐이다. 그곳에는 자연이 선물하는 바람과 햇살이 있을뿐 우리가 누리는 어떠한 문화적 소산도, 심지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본적 가치의 척도인 자국의 화폐조차도 없다. 수도 딜리(Dili)의 최고층 건물은 4층이며, 국민평균교육연수는 3년에 불과하니 초등학교 4학년만되면 고학력자가 되는 문화경제 기반에, 국가전체에 주소체계와 지번도 없어 그네들 개개인이 소유한 커피농장이 있을리는 만무하다. 그네들에게는 도로를 닦을 재원도 물자도 없고, 농약과 비료를 살 돈조차 없으며 또한 그러한 것들을 사야할 이유조차 없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 들어오는 어떠한 동티모르커피도 유기농인증과 공정무역(FLO)인증이 없다. 그러한 인간이 만들어낸 사치스런 마크를 달기위한 서류도, 행정적 지원도 없을뿐더러 그들의 대자연이 주는 배부른 품안에서는 그저 있는 그대로가 그대로의 가치일 뿐인것이다. 재배환경은 자연친화적 생태그늘 환경(Friendly Shade)이 조성되어 있으며 수확량과 품종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어떠한 인위적 시도도 없이 모든 커피나무는 고산지 자연에서 야생 그대로 자라나고 농민들은 자연의 상태 그대로 전통적으로 자신의 마을 산간지역 도처에 영근 커피체리를 채집할 뿐이다. 고산지대 콩답게 밀도가 상당히 높으며, 신맛이 강하지 않고 싱그러운 열대의 향미와 함께 깔끔함과 뒤를 치고 올라오는 단맛, 그리고 훌륭한 밸런스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투박한 색상의 콩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거친 비탈길을 맨발로 걸어 커피체리를 채집하고 씻어 말리는 커피농가 각각의 삶과 땀이 배어있고, 비록 소량생산이지만 자연이 주는 선물에 대해 감사하는 그네들의 소박한 정성이 담겨있다.

해마다 7,8월 커피나무에 체리가 빨갛게 익어갈 때 그네들의 꿈과 삶도 같이 여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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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은신처이기도 한 대표 커피산지 에르메라 라테포호 농가마을

섬나라이자 동시에 산악국인 동티모르의 척박하기 그지없는 자연은 커피나무에게는 신이 주는 선물이다.  전체 생산량중 아라비카(Arabica)의 비중이 70%가량 되며, 좋은커피가 나오는 주된 생산지역은 에르메라(Ermera), 라테포호(Letefoho), 아이나루(Ainaro), 아일레우(Aileu), 등 험준한 산악영토로 라테포호등은 한정된 정보로 인해 인터넷검색시 커피산지로 소개되기 보다는 게릴라 활동지역으로 기사가 나오고 있다. 수도 딜리(Dili)에서 남서쪽으로 반나절을 달려가면 대표적 커피산지 에르메라의 시작이다.

정말 동티모르의 전설처럼 악어가 나올것 같이 이렇게 썰렁한 해변도로를 지나, 산골마을 소녀가 목욕하는 물웅덩이도 지나고, 가끔은 관광지로도 개발될듯한 깍아지른 절벽마을도 지나면, 어느덧 해발고도는 1000미터가 훌쩍넘어가고 에르메라 깊숙한 곳 라테포호 산지이다.

국토의 서쪽을 종단하는 외길이자 비포장이나 다름없는 이 굽이굽이한 길을 개보수 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는 이는 글로벌 커피기업 스타벅스의 산하기업인 CCT이다. 어째 우리 일제 강점기때 대륙전쟁의 수탈을 위해 일제가 세운 경부철도가 생각나 썩 유쾌하지는 않으나 어쨌든 이 길로 스타벅스로 들어갈 질좋은 커피콩들이 산지에서 속속 운송되어 나올것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하늘이 맞닿아 있는 길마다 나리우는 햇살을 받으며 곱게 펼쳐진 커피 파치먼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야생 커피를 수확하는 농민들은 더 많이 수확하고 말리기 위한 몸부림도 없이 그냥 그저 자연이 나린 그대로의 선물로 생각하고 앞마당 한켠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을 공유하며 사이좋게 커피 파치먼트와 따사로운 햇살을 나눌 뿐이다.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의 시구절처럼 하늘과 맞닿는 마을 앞마당에 우리네 고추처럼 널린 커피 파치먼트(Parchment)들은 정겨웁기 그지없다. 커피 열매를 채집하여 세상에 내다 팔아 세상과 교류하는 통로를 열고있는 커피 농가에게는 어쩌면 척박한 자연 자체가 질 좋은 커피를 수확할수 있는 자연의 선물 그 자체일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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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천연야생커피는 남미나 아프리카의 플랜테이션 재배지처럼 나무마다 가지가 휠 정도로 주렁주렁 촘촘히 열리지 않는다. 그저 어린시절 우리네 마을 뒷산에 수줍은 산딸기가 조그많게 피어나듯 그렇게 가지마다 적당한 소담스러움으로 열매맺힌다. 익은 커피열매는 비탈길을 맨발로 내딛는 철부지 아이의 작은 고사리 손으로도, 가족을 위해 인생의 모든 역경을 이겨낸 거칠어진 늙은 농부의 손으로도, 그저 사람의 손으로만 피킹(Picking)되어진다. 기계 수확이 불가하기에 잘 익은 커피콩만을 골라 수확한 우수한 맛과 향의 커피가 동티모르에서 세계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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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방법은 마을간 커뮤니티가 잘 되어 있어 공동작업장이 있거나 공장이라도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서는 발효조로 쓸수 있는 물탱크가 있어 스페셜급으로 맛과 향의 깊이가 더 좋은 풀리워시드(Fully-Washed)가 생산되나 생산원가가 높아 이는 전체생산량의 30%에 불과하다. 물이 귀한 섬나라이고 농가에서 개별펄핑(Pulping)을 하다보니 탱크조설비 없이 가능한 세미워시드(Semi-Washed)가 전체생산량의 70%를 차지하며 농가에서 잘 말려진 파치먼트(Parchment)는 수도인 딜리(Dili) 주변의 공장에서 훌링(Hulling)과정을 거쳐 커피소비국으로 넘어갈 그린빈(Green Bean)으로 커피마대에 담겨진다. 맛과 향에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기보다는 부드러운 단맛과 훌륭한 밸런스로 평가받는 동티모르 커피는 소외된 산지의 하나로 그네들의 정직하고도 건강한 노동의 산물로 소비국의 향그럽고 건강한 영감을 자극하기 위해 적도아래 향기의 한 귀퉁이에서 아직은 조용히 그 호홉을 고르고 있다.

 

 

 

글/사진 

박창선(Sean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