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맞는 하루인데
매일 저녁 떠나 보낼 하루일텐데
오늘은 사뭇 기분이 다르다.
모든 날들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다시 못올 날들이지만
올 해를
아마도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아서일 것이다.
누구나가 그렇듯
지나온 한해가 고스란히 뇌리를 스친다.
유난히 기쁜 소식이 많았던 한해
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던 한해
더불어 지나온 7년도 함께 생각이 난다.
막상 공동체에서 떨어져
방황하던 시간들
예외랄 것 없이 누구나 그렇겠지만
세상 속에서 산다고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도원에서 보던 세상과
나와서 만나게 된 세상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낯설고 외롭고 가혹하고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아픔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현재가 더 기적같고 고맙게 느껴진다.
그리고 많이는 아니지만
그나마 성장한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수도원 안에 있었으면 평생 느끼지 못했을 일들
신부로서 수도자로서 대우받고 살기만 했었으면
평생 겪지 못했을 일들
한편으로는 고맙게까지 생각된다.
이제는 마음에 미운 감정 하나 남아있지 않다.
누군가는 이야기 한다.
좀 일찍 해결하시지 그랬냐고.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미운 마음들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때는 미운 마음으로 일관한 적도 있었다.
20년 가까이 살았던 곳에서
일원 한푼 없이 변명 한마디 없이
쫓겨났으니 그럴 자격이 있다 싶었다.
외면하고 무시하고
대우가 달라진 사람들을 보면서
회의감에 젖었던 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서운함이 미움으로 바뀌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싶었다.
여기 저기 다시 들어가기 위한 공동체를 알아보면서
먹고 살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굽실거리고 때로는 비위도 맞춰가면서
살아야 하는 나 자신이 미웠던 때도 있다.
그분 역시 미움에서 제외되지 않았었다.
일의 시작이야 나로부터지만
도대체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그분에게 미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고맙고 고맙다.
수도회에서 내쳐지지 않았으면
평생 배우지 못했을 일들
겪어 보지 못했을 일들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
그것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오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벽을 타고 미끄러지고
홀로임을 절감하고
어쩌면 그것 자체로 세상을 끌어 안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일이면
새해가 밝아온다.
피정으로 시작하게 될 새해
새해에는 좀더 멋진 삶을 살아보리라 다짐한다.
지난 한해
그리고 지나온 어려운 시기들
기도해주시고 도움 주셨던 많은 분들
다시한번 깊이 감사한다.
삶으로 갚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지 싶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다.
떠오르는 해가 고맙다.
또 다른 시작이 고맙고 고맙다.
Photo by Sanisu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