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

년말 어느 식당에서

큰달팽이 2014. 12. 28. 18:32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덟 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한 눈에도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인아저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앞 못 보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아저씨는 그때서야 그들이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저어. 아저씨! 순대 국 두 그릇 주세요."

"응 알았다. 근데 얘야 이리 좀 와 볼래!"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아저씨는 그래도 참으면서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렀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든 아이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낯빛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아저씨 빨리 먹고 갈께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아이는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 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다.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아저씨 빨리 먹고 갈께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잠시 후 주인아저씨는 순대 국 두 그릇을 갖다 주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앉아서 물끄러미 그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아빠, 내가 소금 넣어 줄께"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 통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앞 못 보는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아 주었다.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으니까 어서 밥 떠 내가 김치 올려 줄께."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아저씨의 얼굴을 돌리는 눈에는,

덩달아 눈물을 가득 고이고 있었다..

 

어둠은 빛을 깨닫지 못하지만, 어둠 속에 빛은 반짜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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