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오늘날 현대 사회의 영적인 흐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시대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교 신자들 또한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있어서 예외는 아니라고 보여 진다. 즉 하느님을 찾는 교회 안에서만 부르짖고, 교회 밖에서는 하느님과는 전혀 무관하게 실질적인 무신론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기를 내세워 존재를 알려야 하는 상황 안에서 神이란 하나의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의 징표 안에서도 교회는 끊임없이 시대의 옳지 못한 흐름을 거슬러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끝없는 항해를 계속하고 있으며, 항상 하느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교회는 우리 사회 안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느끼려 노력하고 그것을 모든 이들에게 전하려하며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이들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歷史 안에서 심오하게 당신 자신에게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役事하심을 바라보고,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것처럼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모든 이들에게 열려진 기도의 한 방법으로서 떼제 노래와 함께하는 기도는 큰 가치가 있다 하겠다. 이에 본 소고에서는 떼제기도에 대하여, 떼제 기도의 정의, 기도에 도움이 될 만한 제언(기도의 장소 및 분위기, 노래 부르기), 떼제 기도의 구성 내용, 떼제 기도의 신학에 대하여 알아본 후 떼제 기도에 대한 평가에 대하여 간략하게 알아 볼 것이다.
Ⅱ. 본 론
1. 떼제 노래와 함께하는 기도의 정의
떼제 기도는 본래 초기 떼제 공동체 수도원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나 점차 일반 사람들에게 적당한 형태로 개발되어 왔으며, 하느님 나라와 교회의 일치에 대한 열망으로 이루어진 이 기도는 묵상정신에 충실하며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다. 먼저 선창자가 짧은 찬미가를 부르면 나머지도 계속 되풀이되는 찬미가에 동참하게 되고 이러한 노래는 정한 횟수 없이 그 기도 공동체의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보통 노래 외에 몇 구절의 짧은 성서 봉독을 함께 묵상하기도 하며, 일정한 침묵 후에 각자가 하고 싶은 대로 짧은 기도를 바치게 되는데 그 기도는 단순한 것이 좋다. 이러한 떼제 기도는 획일적인 강제성이 전혀 없이 공동체의 자유로운 참여로서 이루어진다. 특히 노래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떼제 기도는 짧은 노래를 오래 반복하는 가운데 기도가 더욱 깊이 우리의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서러움과 맺힌 한을 모두 불태워 버림으로서 우리의 가슴은 열리고 그리스도의 평화 넘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단, 이러한 노래는 기도를 더욱 알차게 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여 노래에 기도의 묵상적 성격을 주도록 해야 한다.
2. 도움이 될 만한 제언
1) 기도의 장소 및 분위기
눈부신 밝음보다는 은은한 간접조명의 분위기가 좋다. 의자나 걸상도 필요하지만 무릎꿇고 엎드려 기도 드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방석 같은 것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함께 나아가는 것이 떼제기도이므로 하느님의 사랑의 징표인 십자가, 성화(이콘), 펼쳐진 성서, 여러 개의 촛불, 꽃 등으로 조화 있게 꾸미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교회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
둥그렇게 둘러앉는 것은 좋지 않다. 이런 식으로 앉으면 다른 사람이 들으라고 내 자신을 내보이는 것이 기도라는 잘못된 인상을 주기 쉽다. 왜냐하면 기도하면서 우리가 바라보는 분은 그리스도이신 만큼 참석자가 모두 같은 쪽을 향하는 것이 좋다. 특히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로 자발적인 기도를 드리는 기회가 포함된 떼제기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2) 노래 부르기
노래로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을 찾는 아주 훌륭한 길이다. 떼제의 노래의 특징은 짧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는 것인데 이것은 묵상적 기도를 돕기 위함이다.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짧은 가사는 금새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을 오랫동안 반복해 부름으로써 이 내용이 우리 온 존재 안으로 스며들게 된다. 이 단순한 노래들은 우리가 혼자 있을 때도 마음의 침묵 속에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게 해 준다.
떼제기도의 노래들은 자유롭게 거듭거듭 되풀이되어 노래하도록 아주 짧은 문장으로 되어 있으며, 꼭 몇 번 되풀이해야 된다는 식으로 회수가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오랫동안 자꾸 반복해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기도가 더욱 깊이 우리의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기도의 묵상적 분위기를 잘 자아내기 위해서는 모두 노래를 정확하게 잘 부르는 것도 매우 중요하며, 노래 부를 때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화음과 성량에 유의하여 기도 분위기를 흩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떼제 기도의 구성 내용
1) 간편한 공동기도
① 묵상 노래
떼제 노래 중에 묵상적인 분위기가 담긴 노래("주님의 자비를 영원히 노래하나이다","주를 찬미하나이다 주는 좋으신분 주를 찬미하나이다 알렐루야","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 한두 곡을 부르면서 기도회를 시작한다. 많은 이의 참석이 예상될 때는 먼저 온 사람들이 바로 노래를 시작해도 좋다. 이렇게 해서 예식은 돌연히 시작되지 않고 참석자는 각자 서서히 동참하게 된다.
② 시편과 알렐루야
모두 다 왔을 때 시편을 노래한다.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시편을 한 구절씩 읽거나 가능하다면 독창으로 노래한다. 그러면 모두 함께 "알렐루야"를 노래함으로써 응답한다. 정해진 시편 전체를 전부 다 읽을 필요는 없다. 이해하기 쉽고 더 가슴에 와 닿는 구절들을 잘 골라서 읽거나 노래한다. (시편 146,1-2.6-9 ; 34,2-7 ; 27,7-8.13-14 ; 34,14-16.18-19 ; 57,8-12 ; 96,1-2.11-12 등등)
③ 독서
그리 길지 않고 해설이 필요없는 성서 구절 하나를 고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테면 성서 모임 등에서는 더 어려운 부분을 택할 수 있다. 다음의 인용된 부분만을 읽거나 괄호 안에 제시된 구절을 모두 읽을 수도 있다.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 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 5,1-12)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3-17)
-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 10,7-15)
④ 묵상 노래
독서가 끝나면 한 곡의 노래를 여러번 반복해서 부른다. 노래를 마음에 새기면서 마침내 노래 소리는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주님께 영광","호산나 알렐루야","우리는 예수를 바라봅니다. 우리의 주님을 바라봅니다","창조자이신 성령이여 우리에게 오소서")
⑤ 침묵
5-10분 동안 성서 말씀을 들은 것을 묵상하거나 기도하면서 침묵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적 침묵을 얻기 위해 억지로 마음을 비우려고 애쓰기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서 기도하시도록 침묵 속에 어린이처럼 신뢰하면서 자신을 맡기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할 때 어느 날 우리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 그분이 와 계심을 발견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조용한 묵상 음악을 틀어 놓는 것이 밖에서 들려 오는 소음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⑥ 모든 인류를 위한 기도
이 기도는 가까이 혹은 멀리 있는 사람들, 지역 공동체, 침묵의 교회의 신자들, 온 교회와 인간 가족을 위한 기도이다. 각각의 청원 기도는 ’Kyrie eleison’,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등으로 응답한다.
-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진리를 더욱 잘 알게 하여 주소서.
-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하여, 나라 간의 평화를 위하여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 크리스찬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주님, 그들의 미움을
가라앉혀 주시고 그들과 우리의 마음을 당신의 충만한 사랑으로 채워 주소서.
⑦ 자유 기도
미리 준비된 청원의 기도를 다 마치면 참가자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한 사람의 기도가 마치면 같은 응답의 노래를 한다. 물론 이런 자유 기도는 짧아야 하고 또 하느님을 향해 드리는 기도이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하여 장황하게 늘어 놓는 말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아주 짧아도 되고 한 문장이며 족하다.
⑧ 주님의 기도 : 주님의 기도를 외거나 노래함으로써 모든 청원기도를 맺는다.
⑨ 마침 기도 : 끝맺을 때는 누군가 마침 기도를 한다. 또는 좋은 기도문이나 성인들의 글 중에서 마침기도로서 적합한 것이 있다면 이를 택하여 읽을 수도 있다.
⑩ 묵상 노래
기도 모임은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 묵상 노래("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기뻐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를 찬미하라 온세상이여 주님을 섬기라 기쁨 속에서 알렐루야 기쁨속에서")로 끝맺는다. 꼭 가야할 사람은 지금 가도 되고 다른 이들은 노래를 계속 부른다. 이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이다. 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기도를 마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기도처에서 일어나 나가는 동안 묵상 음악을 틀어 놓는 것도 좋다.
2) 떼제 기도의 프로그램과 그룹별 모임
프랑스의 떼제에서는 젊은이들 모임이 매주 계속 되고 있다. 이 모임을 통하여 유럽 각국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남북미로부터 찾아온 많은 청년들은 공동체의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고 성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한편,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여러 나라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는 가운데 소박한 나눔과 교제를 통해 일상 생활 속에서 복음을 살아 나가고 내적 생활과 인류의 연대를 견고히 할 길을 모색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들은 한 주간을 단위로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어 그 리듬 속에서 생활할 때 더욱 깊은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사정이 여의치 못한 경우 목요일 저녁 혹은 금요일부터 시작하여 주일까지의 주말 프로그램을 참가할 수 있다.
그룹 선택에 있어서 만 17-29세 젊은이들의 경우는 여름 동안 다양한 그룹을 통해 폭넓은 체험을 가질 수 있다. 어떤 그룹이나 떼제 공동체의 형제 한 사람과 매일 한 차례 성서 묵상 시간을 갖는 것은 공통적으로 이루어지고, 참가자 규모가 아주 작은 주간에는 선책의 폭이 적어질 수 있다. 30세 이상의 그룹은 기도 시간 이외에는 성인들끼리 머물면서 식사, 성서 묵상과 소그룹 대화 등을 진행하며 차 마시는 시간과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나라별 모임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침묵 피정도 가능하다. 또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프로그램은 여름철(7-8월)과 부활절, 성령강림절 주간에는 따로 마련된 집에서 여러 가족이 그룹을 이루어 지낸다.
떼제의 하루 일과(평일)는 다음과 같다.
8:20 아침기도, 9:15 아침식사, 10:00 모임, 12:20 낮기도, 13:00 점심식사,
14:00 성가연습, 15:30 모임, 17:30 다과, 19:00 저녁식사, 20:30 저녁기도
떼제의 그룹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① 믿음의 원천(wellsprings of faith) :
떼제에 처음 오시는 분들이나 첫 주 동안 참가하는 이들이 성서묵상을 토대로 신앙과 생활에 대해 서로 나누는 그룹이다.
② 성서 심화 그룹(Bible group) :
성서의 한 주제를 가지고 깊이 공부하고 묵상하는 그룹으로서 이미 떼제에 와 본 적이 있거나 2주 이상 머무는 이들에게 권하는 프로그램이며,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여름과 부활절 주간에만 진행한다.
③ 작업그룹(working group) :
오전 오후 나누어서 한 때는 주로 일을 하면서 서로 친해지는 기회를 갖고, 다른 한 때는 이 그룹에 속한 젊은이들끼리 성서 묵상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④ 침묵피정(silence) :
깊은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원하는 이들은 1주일 동안 피정을 할 수 있으며, 이 기간 동안 공동기도 외에는 피정의 집에서 따로 생활하는데, 공동체의 수사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4. 떼제 기도의 신학
기도는 역사와 구세사 안에서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서로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을 배우게 한다. 떼제 기도 역시 우리의 일상 생활 안에서 단순 노래 기도와 이콘의 바라봄과 내적 고요인 헤시카즘과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유익한 기도라 할 수 있다.
1) 단순 노래 기도
성 아타나시우스는 "선율을 붙여 성구를 낭송할 때 우리는 그로 인해 자신의 차분한 생각이나 마음의 평정을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성당에서 외운 시편 말씀을 반복해서 노래하라. 그것도 한 번이나 두 번이나 세 번뿐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 몇 번이고 노래하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그로 인해 커다란 힘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나는 한번 잃었던 신앙을 막 회복했을 무렵 교회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린 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선율보다도 노래에 붙어 있는 말씀을 듣고 감동한다." 이처럼 고대의 신자들은 노래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신자들이 노래할 경우 아무래도 어느 정도 단순한 노래여야 했기에 신자들이 부를 수 있도록 단순화되었다. 즉, 노래는 모두 하나의 소리처럼 노래한다는 이상 때문에 단순화되었다. 이와같이 기도하고 노래한다면 그로써 신자들은 한 마음, 한 영혼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고, 그와 동시에 교회가 마음을 하나로 하여 소리를 내면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일치를 강화하고 그리스도적 사랑을 육성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노래는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게나 일치를 초래하며, 혹은 거룩한 의식을 더 성대하게 감싸준다.
작크 보수에(Jacques Bossuet)는 단순함의 기도를 하느님과 관계된 대상 - 하느님 자신이거나 하느님이 지닌 어떤 완전성이거나, 그리스도나 그분의 신비 중 그 어떤 것이거나 또는 다른 어떤 그리스도교 진리거나간에 -을 단순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응시함이라고 정의했다. 먼저 묵상에서 사용된 추리는 이제 단순한 지적 응시로 바뀌고, 후에 하느님께 대한 단순한 애정어린 관심과 합일된다. 단순함의 기도는 그것이 지닌 단순성 때문에 기도하는 특수한 방법이 따로 없고 그냥 하느님을 응시하고 사랑하는 것뿐이다.
2) 이콘의 신학
이콘(icon)은 희랍어 에서 유래한 말로 이는 형상, 모상, 유사함, 닮음, 모습이라는 뜻으로서, 유사한 모습, 마음에 그리는 像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콘은 성화라고 한다. 이콘은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1고린 15,49), "여러분은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 버렸고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골로 3,9-15)의 성서적인 배경과 함께 초대 교회부터 수도원에서 기도 안에서 그려져 내려 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인 그림이라기 보다는 동방의 성서적, 교부적, 역사 신학적 그리고 전례적인 전승 안에서 보존되어 오는 유산이다. 따라서 이콘의 대상과 주제는 일차적으로 성서의 인물과 그 배경이며, 그리고 교회의 성인들의 생애와 삶이다. 또한 이콘 안에서 교회의 풍성한 교의신학적 주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위와같이 이콘은 쓰여지고 말로 전해진 전승과 같이 교회의 거룩한 전승을 드러내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성 바실리오에 따르면 7번째 Ecumenical 회의(787)에서 이콘을 믿음의 선포에 비유했다. 신적인 진리의 설파로서 이콘은 형상과 분리될 수 없는 전례적, 성사적인 교회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 말씀의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Ouspensky는 "이콘은 이러한 방식으로 더 높은 실체를 표현하고 구체화하며 나타나게 하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콘을 공경하고 관상한다. 왜냐하면 이콘의 목표는 하느님의 모습을 가시적 형상으로 증언하는 것, 눈을 자극하는 것의 의미를 해독하는 것, 결국 관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콘을 보는 사람은 그것이 드러내고 있는 신비를 받아들이고 위엄과 순수한 의식을 갖추고 이콘을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3) 헤시카즘
Hesychasm은, 적막, 고요, 침묵, 정적, 정신집중, 내·외적 고독을 의미하며 하느님과의 일치를 가리키는 에서 유래된 용어이며, 동방교회에서 특히 아토스산의 수도사들 사이에서 행해졌던 내적이고도 신비적인 기도 관습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내적인 기도를 하고 마음의 고요함을 찾고자 하는 자를 가리키는 내적인 의미로 쓰인다. 시나이의 성 그레고리오의 제자들은 불가리아, 세르비아 그리고 러시아 등의 슬라브 동방에 헤시카스트 가르침을 전파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헤시카스트들의 성소는 오로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결합하는 수행에 봉헌되었다.
헤시카스트들은 예수의 기도문을 계속하여 반복하는 일을 특별히 중요시하였다. 이들은 예수의 기도문의 계속적인 암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지원자들에게 특별한 체위 - 머리를 숙이고 시선을 심장부에 고정시키는 자세 - 를 권장하였으며,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영혼, 정신, 육체의 일치점이 되는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고, 일체의 상상에 대해 주의하고 경계하며, 모든 생각을 공허하게 하고, 자신과 인간의 죄와 덧없음을 슬퍼하고, 모든 덕을 몸에 익혀 번거롭지 않은 마음을 확립하도록 했다.
헤시카즘의 본질적인 목적은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바로 영혼과 정신과 육체의 일치점이 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팔라마스의 성 그레고리오에 의하면, 하느님의 본질로부터 나오는 하느님의 힘, 즉 타볼 산에서 모습이 변하시는 그리스도의 빛에 의해 헤시카즘 실천자는 지상에서도 신직관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내·외적인 정적 속에 잠심하고, 자신과 피조물과 하느님과의 내적인 모든 관계나 피조물의 존재이유를 파악한 다음 관상에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피조물이라고 하는 관상의 대상은 없으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내적, 생명적 만남에 관해서만 관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관상자 자신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생명 속으로 온전히 몰입해서 하느님의 직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4) 관상
그리스 용어인 관상(theoria)은 theos(하느님)과 horao(보다)의 합성어로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는 지속적인 집중으로 정의 된다. 즉 theoria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보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관상은 영에 관한 것들을 앎으로써 지상에 있는 것들보다 하느님을 아는 것을 더 사랑하는 이성적인 혼의 고결한 상태로 규정된다.
관상하는 것은 그 본성을 추구하기 위해 마음으로 어떤 것들을 생각하는 것·철학화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진리 안에서 존재를 이해하기 위하여 창조된 것들을 그 섭리적 기능 안에서 그것들이 하느님과 관계하는 대로 보는 것이며, 존재를 생겨나게 하고 설명해주는 신적인 의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오리게네스에 의하면 창조적인 행동의 비밀은 창조의 모든 < ( 사색, 생각, 계획의 주격·복수)> 계획들이 저장되어 있는 그리스도에게서 점차 드러났다. 그러므로 관상은 다양한 ’강생’에 대한 이해이다.
이러한 관상의 기관은 - 관상은 바라보는 것을 뜻하며 바라본다는 것은 눈과 일반적인 감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정신과 지성적인 감각을 통하여 바라보는 것이며, 궁극에는 맑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기도의 시각을 통하여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 ’영적 감각’, 내적 직관을 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은 바로 하느님의 자리이며, 인간의 의식과 지성과 자유를 구비한 인격의 원천임과 동시에 하느님께서 신비하게 작용하시는 곳으로써, 인간과 하느님과의 만남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마음 속에서 완전한 모양으로 실현된다.
그러나 인간이 마음으로 하느님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표현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능력은 그 자체가 유한하며 불완전하기 때문에 에바그리오는 마음이 순수한 빛의 시각이 되기 위해서 마음을 완전히 벗기는 것, 모든 열정적인 움직임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많은 이성적 개념들을 제거하는 것을 요구하며, 에바그리오의 충실한 제자 니느웨의 이사악에 의하면, 肉적인 단계의 열정과의 투쟁을 통하여 영적인 단계, 성령을 전적으로 따르기 위하여 거치는 모든 정화는 사랑을 실천하는 praxis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관상의 삶에로 인도한다. 이러한 정화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관상은 주님과의 끝없는 유대,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바라봄으로서 하느님을 우리 안에 사시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적 충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적 고요함으로부터 출발하며, 그것은 비움의 길이다. 전례 안에서 기도, 말씀, 찬미가, 성화 등을 들음과 바라봄은 영적인 전망을 실현한다. 즉 전례 안에서 듣고 볼 수 있는 관상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향한 고요함에 머물 수 있게 된다.
5. 떼제 기도에 대한 평가
1995년부터 시작된 떼제 기도는 가톨릭 교회의 묵주기도와 불교의 108배와의 공통점이 있다면 ’반복적인 행동’으로 바치는 기도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떼제 기도 역시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를 그 특징으로 한다. 쉽고 단순한 가사와 가락의 노래를 십여번씩 반복해서 부르는 형태의 떼제기도는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묵상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청년들이 본당에서의 단체 활동을 중시한 나머지 신앙을 내실화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기도와 침묵, 나눔의 과정인 ’떼제 노래와 함께하는 청년 기도모임’은 그들의 신앙 성숙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대한,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우리 자신의 열망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어 우리의 마음이 온 세상만큼이나 드넓게 트였으면 하는 것이 떼제 기도의 목적이다.
위와 같은 목적에 걸맞게 떼제 기도의 전반적인 흐름은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단순하게 짜여져 있다. 즉 짧은 묵상 노래·시편과 알렐루야·독서·청원기도 등 모든 구성 요소가 간단하고 짤막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단순 기도의 반복을 통하여 독서와 침묵의 시간을 통하여 기도의 묵상적인 요소는 더욱 심화되며, 내적인 고요함 속에서 천상의 삶을 직관하며 관상에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의 바쁜 일상의 흐름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찾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게 될 때 또다시 하느님을 찾게 하는 떼제 기도는 그 단순함과 침묵, 그리고 이 단순함과 침묵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관상의 삶을 통해 신앙을 견고히 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떼제 기도는 가톨릭 교회 뿐 아니라 개신교를 포함한 그리스도교 뿐만 아니라, 힌두교 및 이슬람교 등 초교파적이고 보편적인 기도 모임으로서 종교간의 일치의 차원에서도 모든 이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현대적인 기도의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결 론
우리는 지금까지 떼제 기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떼제 기도의 전체적인 흐름은 단순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단순함은 노래를 통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올리며, 하느님께 집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승의 움직임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마음의 대화를 통하여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며 일상생활 안에 하느님의 평화 넘치는 기쁨을 살게 하는 기도의 삶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순함을 통한 떼제 기도는 하느님의 강생의 신비인 그리스도 육화에 대한 묵상을 위한 것이다. 이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묵상은 바로 이콘을 바라봄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우리는 이콘 안에서 그것이 드러내는 신비를 묵상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직관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마음을 향할 수 있고, 마침내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한 자리를 내어드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콘의 바라봄과 더불어 내적 고요함(헤시카즘), 즉 침묵을 통하여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신비 안에서 바라보게 되고,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마음의 비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는 더욱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게 된다.
떼제 기도는 기도의 단순함, 이콘의 직관, 내적 고요함을 통하여 기도의 목적인 하느님 관상에로 인도된다. 이러한 기도의 흐름은 관상에로의 단계를 형식화한 것이다. 즉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방법으로서 단순함을 통하여 마음을 모으고, 이콘을 통하여 하느님의 신비를 바라보며, 내적 고요함을 통하여 마음을 비워드리며,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떼제 기도는 하느님 관상에로 나아가기 위하여 마음을 모으고, 예식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바라봄을 통하여 마음의 자리를 고요하게 비움으로써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며, 이는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하기위해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방의 영성 작가들에 의하면 "지속적으로 마음의 습관적 상태를 하느님께 두는 것으로써 ’마음의 기도’라고 부르며, 그것에 도달한 사람은 하느님과의 영원한 일치 안에서 끊임없이 기도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마음으로 기도하는 떼제 기도는 ’노래’라는 매체를 통하여 오늘날의 다양한 계층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특히 한국의 ’흥얼거림의 문화’ 안에서 더욱 친근감있게 포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이러한 노래를 통하여 마음을 모으고, 집중된 마음을 가지고 ’직관’하는 것은, 마음으로 통하며 마음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직관 문화’에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문화적 수용 안에서 그 마음의 방향이 단순한 한풀이나 넔두리가 아니라 그 마음이 하느님을 향하고 하늘로 들려 올려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구세사의 흐름 안에서 자기 중심의 삶을 벗어나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국의 문화 안에서 기도의 마음을 하느님께 인도하여야 할 것이며, 이는 떼제 기도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곽승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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