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간음

큰달팽이 2006. 11. 28. 11:34

성 윤리에 성경적 가르침

      

 

“술취한 아버지가 딸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다”, “시아버지가 홀로 있는 과부 며느리와 통간” 이런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저질 주간지에서나 볼 수 있는 제목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바로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성경은 聖經(거룩한 책)이면서 동시에 性經(성에 대한 책)이라할 만큼 성적인 범죄에 대해서 많이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주간지처럼 사람들의 성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은 아니라 성 문제가 인간의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든 가장 보편적인 문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성 문제를 바로 이해하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우선 성경을 들추어보아야 한다.

 

 

1. 구약 성경

하나님이 성을 창조할 때는 정말 아름답게 창조했으며 그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최대의 축복 중의 하나였다(창 1:27,2:24). 그러나 사람이 범죄한 이후로 성은 쉽게 타락의 도구로 변하고 말았다. 이미 고대사회에서부터 죄악은 성이란 도구를 통해 개개인을, 사회 전체를 오염시켰다. 노아시대의 죄악도 성적인 죄악이었으며(창 6:1-2) 아브라함 당시의 죄악의 성이었던 소돔과 고모라도 성적으로 타락한 사회였다(창 19:5-8). 이렇듯 성적인 죄악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 역시 성적인 범죄에 빠졌다. 레위기 18장에 나타난 성적인 범죄에 대한 계명이 이를 증거한다. 이 목록에 근친 상간은 물론 짐승과의 교합까지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당시 사회가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했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구약 성경에 계속 언급되는 사람들의 죄악은 하나님께 대해서는 우상 숭배요, 사람에 대해서는 간음이요, 물건에 대해서는 탐심이라고 요약될 수 있을만큼 성적인 범죄는 심각했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이런 범죄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구속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유다지파의 조상인 유다가 희생이 되었으며(창 38장)이스라엘을구원했던 사사중의 한 사람인 삼손이 무너졌으며(삿 16장),성군으로인정되는 다윗도 희생이 되었다(삼하 11장).이런기록들을통해 우리는 성적인 범죄에 관한 한 어떤 민족도, 어떤 사람도 면제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 신약 성경

성적인 범죄에 관해서 예수님은 모순되는 듯한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산상 수훈에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을 간음죄로 치부할 만큼 엄격한데 비해(마 5:28) 실제로 간음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용서해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요 8:1-11). 얼핏 모순되는 듯하게 보이는 이 대조는 성적인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죄임을 지적하는 동시에 그런 죄까지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신약 교회에서도 성적인 범죄의 강도는 약화되지 않았다. 특히 항구라는 지역의 특성상 고린도 교회는 성적인 무질서로 악명이 높았다. 심지어는 교회내에 계모와 성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이 있었는데 교회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만큼 성적으로는 해이해졌었다(고전 5장).사도바울은이문제를 지적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심하게 책망했는데 이 책망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적인 기준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갈라디아 교회 하면 성적인 문제와는 무관한 교회로 생각된다. 주로 교리적인 문제로 바울을 괴롭혔던 교회였는데 그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육체의 일을 언급하면서 성적인 범죄를 강조했던 것은 그 당시 성 문제에 대한 통념이 어떠했을지를 짐작케한다(갈 5:19).

 

 

3. 오늘의 현실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역사적인 상황이 이 정도라면 그 후 수천 년을 지나 세속화가 가속되어 탈기독교사회(Post-Christian Era)라고 불리는 현대사회에 성적인 범죄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온 사회가 성적인 유혹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 연극, 잡지, 소설, 광고 등 어느 한 곳 성의 유혹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심각한 것은 이제는 교회에 까지 성적인 타락이 스며들어오고 있다. 크리스천들 가운데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은밀한 중에 성적인 죄를 범하고 있다고 한다. 게리 콜린즈 박사와 대화중에 미국교회 내에 소위 중생했다는 크리스천들 가운데도 혼전 관계를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근간에 적지 않은 목회자들의 성적인 실수로 교회와 사역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될 때면 사탄이 성적인 유혹의 무기를 사용하는데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성경의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는 이방 신당에서 성적인 범죄가 거룩한 행위로 둔갑된 것이 문제였다. 성적인 범죄가 당연시 될 뿐 아니라 오히려 종교적인 행위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인다. 오늘날에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가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윤리적인 가치 기준이 상대화되면서 성적인 범죄가 자연스러운 생활의 한 표현이 되고 외설적인 묘사가 예술을 빙자해서 정당화되고 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성적인 죄악에 대해서 마땅히 있어야 할 죄책감도 희미해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성적인 유혹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크리스천 직장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직장내의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문제를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4. 성경적인 윤리관

무엇보다도 성경이 말하는 성적인 문제에 대한 기본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 성도들처럼 오늘날 성도들도 가치 기준의 혼란을 겪고 있다. 도대체 성적인 범죄는 어느 정도까지를 말하는가?

성경에서는 성적인 범죄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막 7:21-23, 롬 1:26-27, 고후 12:21,갈 5:19-21, 엡 5:3-7).

⑴ 음란, 혹은 호색으로 번역되는 행위로서 성을 하나님의 원래 의도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가장 가볍게는 음담 패설에서부터 포르노성 잡지나 영화를 보거나 퇴폐한 장소에 가서 성적인 자극을 받는 것들을 포함한다.

⑵ 음행은 결혼과 무관하게 직접 성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서 매춘 행위가 가장 직접적인 예가 되며 사랑을 빙자해서 결혼 전에 관계를 갖는 것을 포함한다.

⑶ 간음은 결혼을 한 사람들이 배우자 외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서 음행과 기본적으로 같은 범죄이나 가정을 무너뜨리게 된다는 면에서 더 큰 죄라고 할 수 있다.

⑷ 끝으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 사회에서 점점 심각해지는 것으로 동성 사이의 관계이다. 동성애는 이미 소돔성에서부터 있었으며 신구약을 통해서 정죄된 행위이나 최근 인권, 자유 운운 하면서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크리스천은 성경이 가르치는 성적인 범죄에 대한 기준을 자신의 삶에서 분명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세상의 조류가 타협을 요구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한다(롬 12:2).

성경은 윤리적인 기준을 가르쳐줄 뿐 아니라 성과 관련된 몇 가지 유형을 소개함으로 우리들이 바른 교훈을 얻도록 한다.

⑴ 다윗의 아들 암논은 이복 누이 동생을 사모해서 결국은 그 녀를 겁탈했다. 그것 자체가 범죄 행위였는데 그는 그녀를 내어버림으로 더 큰 죄를 범했다(삼하 13:1-19). 이것은 성적인 범죄에 관한 한 아마도 가장 추악한 유형이 될 것이다.

⑵ 헤롯왕은 불륜인 줄알면서도 동생의 아내와 관계를 가졌다. 그는 세례요한의 책망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돌이키지는 못했다(막 6:14-29). 성문제에 관해 우유 부단한 사람들의 유형이 된다.

⑶ 다윗왕은 성적인 유혹에 빠져서 간음죄와 함께 살인까지 저질렀다. 범죄의 크기로 말하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다행히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해서 돌이키게 되었다(삼하 11:1-17, 12:13). 성적인 유혹의 힘과 회개의 힘을 동시에 가르쳐주는 사례가 되겠다.

⑷ 요셉은 주인 아내의 집요한 유혹을 뿌리쳤다. 거절하고, 같이 있지 않았고 결국은 도망할 정도로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창 39:7-12). 그 바람에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이런 그에게 아마도 사탄은 두 손을 번쩍 들었을 것이다. 성 문제에 관한 오늘 크리스천에게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 된다.

이 네 사람의 유형은 오늘 직장 생활을 하는 크리스천에게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나와는 무관하다 생각하지 말고 한번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필요가 있다.

 

 

5. 다양한 문화

여기서 우리는 성적인 표현의 문화적인 영향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포옹을 하고 입도 맞추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가 있는 반면 그런 행동이 용납되지 못하는 문화도 있다. 또 이 삼십 년 전만 해도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던 행동-남자와 여자가 대로에서 손을 잡고 가는 것 등-이 지금은 얼마든지 허용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의 변화가 윤리의 기준을 흔들어서는 안 되지만 성 윤리를 율법주의로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하나 현실적으로 고려할 것이 있다. 그것은 직장 내의 이성 교제이다. 직장 내의 이성 간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고 해서 이성 간의 교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직장 내에서 이성 간에 호감을 느끼고 결국 결혼에까지 이르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직장의 환경은 과거에는 없었던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6. 구체적인 권면들

이제 성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성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축복의 도구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무엇보다도 경건 생활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청년이 그 행실을 깨끗게 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따라 삼가야 한다(시 119:9). 또한 청년에게 임하는 유혹을 피하기 위해서는 경건한 사람들과의 교제가 필요하다(딤후 2:2). 여러 형태의 유혹에 대해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살전 5:22). 이미 결혼한 사람은 부부 간의 사랑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잠 5:15-20). 미혼인 경우 특별한 은사를 받지 않았다면 방황이 길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전 7:2).

이와 관련해서 사소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중요한 권면이 있다.

산상 수훈에서 지적했듯이 남자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다(마 5:48). 그러므로 남자들은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나, 여기서 여성들의 책임이 거론되어야 한다. 지나친 노출이나 육감적인 옷차림을 하는 것 자체가 범죄 행위일 수는 없으나 그것으로 뭇 남성들이 마음으로 간음을 하도록 자극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크리스천 여성에게 “소자를 실족케 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 여성들에게는 바른 몸가짐이 요구된다.

남자들의 경우 여성을 향해서 친밀을 가장해서 하는 무례한 말이나 행동도 성적인 범죄가 된다. 요즈음 사회 일각에서 자주 거론되는 직장내의 성희롱은 이런데서부터 시작된다. 사탄은 처음부터 엄청난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사소한 상황을 통해서 접근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는 크리스천들에게 유혹의 기회가 된다. 그러나 이런 사회는 크리스천들이 세상과 다름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성적인 유혹이 난무하는 직장에서 크리스천들이 깨끗함을 보여줄 때 처음에는 무시하고 미워하겠지만 결국은 존경할 것이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15).”

 

 

 


성적 유혹의 문제점

1. 직장 내에서의 현상

쪾직장 동료들이 술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과 술집 여자들과의 난잡한 행위들이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프랑스에서 6개월 간 근무한 적이 있는데 직원들은 틈나는대로 포르노영화관엘 갔습니다. 저도 호기심으로 두세 번 갔었는데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 뒤로는 안 갔습니다.

 

신혼여행이 따로 있나요

-요즘 젊은 사원들은 혼전에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을 대수롭잖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남자 직원뿐만 아니라 여직원들도 마찬가지구요. 놀라는 사람이 오히려 구닥다리가 됩니다.

 

원초적 무덤덤

-언제가 한 번 사보팀에서 ‘원초적 본능’을 보고 감상문을 써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직원들은 뭐 대수냐는 식이어서 당황했습니다. 개방된 마음 같기도 하고 타락한 것도 같았습니다.

 

친밀함=은밀함

-저희는 합창단인데 직급이 다 같아서 서로 부담없이 친하고 말을 놓기도 합니다. 단원들은 거의 100%가 크리스천입니다. 그런데 음담 패설을 너무 자유롭게 합니다. 기혼자들은 부부 관계를 농담삼아 얘기합니다. 그런 흐름에 동조하지 않으면 겉도는 것 같아 처신하기가 어렵습니다.

 

-저희가 하는 비디오 사업에는 선정적인 영화가 많고 그러다 보니 그런 영화들 광고 포스터가 사무실 곳곳에 나붙는데 여직원들도 대단찮게 생각합니다. 회사의 이익을 목적으로 너무 당연시 되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안에 한 지체( )

-한 번은 지방 도시에서 크리스천 행사가 있어 1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최측은 남녀 직원이 한방에서 자도록 방을 잡아 주었습니다. 결국 저는 다른 곳에 따로 방을 잡아 잤습니다만 기독교인들이 주관하는 행사에도 이런 문제에는 전혀 배려가 없었습니다.

 

천국의 장미

-저희 회사는 순수하게 교회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지만 장미여관 정도의 농담은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목사님들과 함께 일을 하다보면 진보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목사님들 중의 어떤 분들은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여자가 따라야 맛이나지”라는 얘기를 하시기도 합니다. 또 밤늦게까지 일할 때는 언어 폭력도 심합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의 모국어는

-저희는 회사에는 음담 패설을 너무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말 자체가 그런 사람이었는데 무척 무서웠습니다. 그런 말에 항의를 하면 좋으면서 괜히 그런다고 하고 아무 반응이 없으면 계속 말하다가 좋으니까 아무소리 안하고 듣기만 한다고 능글맞게 얘기합니다.

 

얌전한 강아지가

-저는 교육파트를 맡고 있습니다. 한 번은 여직원들이 퇴근한뒤 스트레스를 풀러간다고 하길래 노래방 정도 생각했는데 실제는 저의 상상을 뛰어넘더군요. 요즘 여직원들은 이렇게 즐기는 것에 대해서 꺼리김없이 얘기하는 편입니다.

 

 

2. 성적유혹의 문제점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주변의 귀에 들리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하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안보면 된다는 얘기는 옛말이 된듯합니다.

 

표지판이 없어서

-학교 다닐 때 한 후배가 혼전 성관계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 때 저는 그것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원론적인 얘기만 있고 실제 적용에 대해서는 언급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금하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사회적 통념 등을 볼 때 기준이 불명확합니다. 특히 젊은이들 중에 기준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크리스천이나 비크리스천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되치기, 그리고 뒤집기

-그런 얘기들을 제하면 마땅히 이야기할 것이 없는게 문제입니다. 오히려 여직원들이 음담패설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고 남자직원들이 음담패설을 하면 그것보다 더 심하게 맞받아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포르노성 잡지 등에 실리는 것은 자극을 위해 비정상적인 것을 게재하게 되는데 그것을 자꾸 보다보면 그것을 정상적으로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매스컴에서 떠들고 전반적인 문화도 그런 식으로 흐르니 크리스천도 그것을 정상적인 것인양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오염이 되는 것이죠.

 

-또 한번은 여직원 교육장에 성교육을 위해 비디오를 설치한 적이 있는데 의외로 대부분이 무지하다고 할만큼 성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성은 좋은 의미로는 축복인데 사람들이 숨기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아직 우리 문화는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여자직원이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심한 상사는 보고만 있기도 합니다.

 

-4년전 영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제가 영업을 할 당시는 룸싸롱이 아주 흔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고객 중에서 그런 것을 좋아하는 이는 그렇게 해줘야 하고 그렇게 안 해주면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 일을 해야할 때 하지 않고 부하를 시키게 되면 그것도 결국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방법을 알았으면 합니다.

 

 

3. 유혹을 극복하는 대안

-사람은 둘러대기 쉬운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속성을 차단하는 것이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성적으로 유혹을 받을 만한 것을 접하고 나서 피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입니다. 그럴 때는 피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유혹받는 것은 개인적이지만 유혹은 사회구조적인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퇴치하는데 크리스천이 힘을 써야겠습니다.

 

-직장인들에게 특정장소를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원하는 사람만 그것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사실 못하게 하니까 밖으로 나가는 것이거든요.

 

-직장 내에서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입니다. 언어폭력이 가장 많습니다. 저희 직장에서는 언어폭력에 대해 대응하는 두가지 유형의 직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형이고 한 사람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무감각한 사람이 직장생활을 잘 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런 말은 일고의 대꾸할 가치가 없는 거라서 그랬다는군요. 남자 직원들도 나중에는 못하겠다고 하면서 안하게 되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지만 반응을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듯 합니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으니 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비크리스천 동료들은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말합니다. 요즘은 무조건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쓸데없이 시간을 보낼 때 유혹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엉뚱하게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성에 관련된 모임이 드문편입니다. 이런 모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건전한 토론모임이 있어야겠습니다.

 

-교회에서의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주는 유혹

노스이스트의 크리스천 사업가인 짐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비크리스천 동료와 멀어지는 않으려고 자신의 신앙적 입장을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 성적인 면에서의 이러한 “후퇴”는 직장 속에서도 발견된다.

“직장내의 남녀동료들간에도 이것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먼저 남자는 어떤 여자동료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지 않은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그들은 각자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하면서 점차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눕니다. 그러다 멀지 않아 서로 깊은 관계속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러나 다른 경우에 있어서는 성적인 것이 전제가 된다. 계절별로 여행하는 사람들중의 어떤 이들은 가정을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부도덕한 “재미”를 기대한다. 짐은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일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저는 그것을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 가는 알고 있습니다. 멀리 가지 않고 길거리에만 나가도 그런 기회는 널려 있습니다. 여행을 갈 때면 같이 간 사람들은 그 날 저녁에 뭘 할 것인가를 궁리 하게 되는데 그들은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생각이 꽉 차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사람들과 저녁만 같이 하고 곧장 호텔로 돌아옵니다. 우습긴 하지만 저의 계획은 호텔에서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하루나 이틀정도 더 빨리 집으로 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업무습관으로 그는 두가지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런 부류들과의 저녁 탈선”을 막아주고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데 대한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 준다.

“저는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기를 소망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음이나 음란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어울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호텔로 와서 일하는 것입니다.”

짐이 원하는 것은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고(베드로 전서 3장15절)”라는 말씀으로 그들과 자신이 차이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알게 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그들과의 구별된 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습관적으로 퇴폐적인 술집을 찾는 것으로 인해 죄악의 덫에 걸려드는 동료와 그것이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차라리 비극입니다. 그들이 ‘대수롭잖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글자그대로 가정과 그의 직장생활을 파탄시킵니다. 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란 심심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죄의 결과는 생명을 단축시킬 뿐입니다.”

 


 

Ma solitude / Georges Moust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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